텅 빈 마음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든다.

경제의 개념과 질서의식을 배우는데 산수가 기본이 된다. 산수는 숫자의 기본 성질을 배우는 분야다. 숫자를 알아야 시계를 보며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얼마가 있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숫자의 기본은 1, 2, 3으로 시작하는 아라비아숫자이다. 아라비아숫자 중 가장 신비한 숫자는 아무것도 없다거나 아무 의미도 없다는 표시의 0이란 숫자이다. 이 0이란 개념은 고대 인도에서 만들었다는 학설도 있다. 고대 인도에서 최초에 만들었다는 이 0은 무한대와 동일한 의미의 기호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1에서부터 9까지는 실존적 존재를 의미하는 숫자이다. 그리고 그 크기와 의미는 각각 하나뿐이다.

하지만 0은 의미하는 바가 다른 숫자와는 다르다. 숫자 1에 0을 오른쪽으로 붙이면 그 숫자가 무한대로 커져간다. 즉 10, 100, 1000, 10000····0식으로 0을 뒤로 붙으면 그 숫자가 무한대로 커진다. 이렇게 무한대로 커진 숫자라도 가장 앞에 있는 1이란 숫자가 사라지면 0의 기호만 남아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반대로 0이란 숫자는 크기를 무한소로 작게 만들기도 한다. 즉 0.1, 0.001, 0.000···1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소수점 뒤로 0을 붙이면 숫자가 무한히 작아진다. 그러나 0은 아니다. 이렇게 작아지는 숫자도 1이란 숫자가 없어지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의 0이 된다. 대단히 큰 숫자와 극단적으로 작은 숫자에서 1을 없애면 양쪽 모두 두 극단의 의미가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 텅 빈 0으로 같아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태양도, 달도, 별도 그 모양이 공 모양으로 둥글게 생겼다. 물론 지구도 둥근 공 모양이다. 숫자 0의 모양인 것이다. 우리는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으면 공것으로 얻었다고 한다. 0원을 지불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0은 둥근 공 모양으로 표시한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가설을 인정한다면 그 폭발은 공 모양으로 지금도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아직은 알 수는 없지만, 태양과 달과 지구가 공 모양인 것처럼 아마 우주도 전체적으로는 공 모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가 무한대로 커지는 근본은 텅 빈 모양으로 팽창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대로 크기가 성장하는 과정을 기호로 설명할 때 텅 비었다는 의미를 지닌 숫자 0을 사용하여 그 크기를 가늠한다. 0이란 숫자는 텅 빈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세상을 크게 볼 수 있고 포용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텅 비우고 멋진 일을 할 때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공 모양으로 텅 비워야 많은 것들을 포용하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이 생긴다. 마음을 공 모양으로 원만하게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존재만을 탁월하게 돋보이도록 하면 파괴와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는 이런 경우를 잘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인 영웅을 내세우는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원더우먼, 앤트맨, 스파이더맨 등은 모두 개인 한 명의 탁월한 능력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영화이다. 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은 혼자 세상을 구하는 과정에서 매우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사건이 일상으로 발생한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협력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세상 이야기와는 다르다. 평화롭고 행복한 삶은 소소한 작은 일들로 엮어진 풍경이다. 혼자 세상을 구하는 영화에서는 개인 우월주의와 우상화가 덧씌워지면서 대중과 발생하는 갈등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순간도 있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공동의 번영을 가져다주는 경우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평범한 많은 사람이 함께할 때 잔잔한 행복이 만들어진다. 개인 영웅이 아니라 마음을 텅 비운 평범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이다. 텅 빈 마음을 뜻하는 0이란 숫자가 오른쪽으로 계속 붙으면서 대중이 되고 국민이 되어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진다. 만일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스트레스가 바위보다 더 무거운 모습으로 다가오면 소수점 아래로 0을 붙여 일을 가볍게 만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0을 소수점 아래로 붙인다는 것은 일을 잘게 나눈다는 의미다. 사회적 재난과 같은 큰일도 잘게 나누면 가벼운 일이 되어 문제점을 해결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매우 인상적이고 잊지 못할 광고가 있었다.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이 잠수복 차림으로 쓰레기를 수거하여 바다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망망대해의 일부 해변에서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폴 등의 쓰레기를 수거하여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다. 이 부부에게 어떤 사람이 묻는다. ‘지금 뭐 하세요?’ 그러자 부부 중 한 사람이 대답한다. ‘쓰레기를 치워요.’ 그러자 또 다시 묻는다. ‘그런다고 바다가 깨끗해지겠어요?’ 그러자 다시 대답한다. ‘바다 전체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지나온 자리는 깨끗해지잖아요.’ 이 광고가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큰일을 작게 나누어 실천하는 행동을 보았기 때문이다. 개인 영웅주의가 아니라 텅 빈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누군가 알아주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지구를 지키는 마음이 멋지게 보였다. 이 장면을 보면서 텅 빈 의미를 뜻하는 0이 무한대로 그 크기를 키우기도 하지만, 커다란 문제점도 무한소로 작게 만드는 것처럼, 이들이 하는 일에서 대가를 치를 수도 없는 무한대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였다. 마음을 텅 비워야 소소한 일도 무한대의 가치영역으로 크게 만들기도 하고, 어렵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은 작고 잘게 나누어 해결할 수 있다. 숫자 0의 신비함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의미다. 우리는 예로부터 마음을 비워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0과 같은 것이고, 마음을 비우면 우주를 닮은 큰마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을 비워야 큰일을 한다는 말은 진실일 것 같다. 비운 공간이 있어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외부 충격에 완충작용도 하면서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의미 있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