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은 변화가 미래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단잠을 깨우는 빗소리가 창문 너머에서 정겹게 들린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이름도 다양하다. 보슬비, 가랑비, 이슬비, 안개비, 소낙비처럼 낭만적인 이름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시름을 안겨주는 폭풍우, 장마비, 때로는 강풍을 손잡고 오는 폭풍우도 있다.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게 찾아오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모두 필요한 비였다는 것을 알게 한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는 깊은 산속 실개천이 되어 시냇물을 만들기도 한다. 시냇물의 바닥 중간 중간에 깊게 파인 곳은 생물들의 풍족한 보금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깊게 파인 곳에 먼저 도착한 물은 동료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흐르는 여유도 있고, 가는 길에 바위 같은 커다란 저항을 만나면 돌아가는 유연성도 있다. 물은 이처럼 흐르거나 순환하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오랫동안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물은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속에 수풀이 뿌리를 내리면서 다양한 물고기들이 세대를 이어가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유혹하는 낚싯바늘만 조심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것도 거의 없다. 그물과 투망으로 고기 잡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깊게 파인 웅덩이 바위 밑으로 잠시 몸을 숨기면 평온하게 지낼 수 있다. 먹이도 풍성하고, 수풀은 그늘을 만들고 물은 풍족하게 흐르니 물고기가 살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비로부터 시작한 생명의 물줄기이다.
 하지만 풍성하게 흐르는 물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미묘한 변화를 인식하고 대응하지 못하면 심각한 고난의 시기가 찾아온다. 비는 언제나 물고기에게만 적당한 양으로 내리지는 않는다. 지구 환경에 따라 물고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가 내리지 않는 초기에는 줄어드는 시냇물의 양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가 시작한다. 그래도 걱정이 없다. 올해만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가끔 있었던 현상이라서 풍족한 이곳에 살면 된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곧 비는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물고기들은 올해는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다. 물의 양이 줄어드는 양이 미세하지만 특이한 현상이 발견되면서 아무래도 물길 따라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많은 물고기들은 그 의견에 따라 정들고 편안하기만 한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몇몇 물고기는 하늘에서 예전처럼 비가 곧 내릴 것이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남아 있기로 했다. 하지만 기대와 과거의 경험과는 다르게 비는 계속 내리지 않고 수량은 자꾸 줄어든다. 그래도 걱정이 없다. 조금 깊은 웅덩이로 몸을 피하면 되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물고기들은 좀 더 깊은 웅덩이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지내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다. 아직 깊은 웅덩이에는 물이 많고 그늘을 만들어 주는 수풀도 있어 편안하기 그지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와는 다르게 시냇물은 계속 말라 들어간다. 급기야 아래와 위를 연결하던 물줄기가 끊기어 바닥을 들어냈다. 이제는 웅덩이와 웅덩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알 길이 없다. 물이 많았던 웅덩이 물도 이제는 증발되어 물고기의 등이 보이기 시작하고 수온은 올라 숨쉬기도 불편하다. 하늘에 비가 오기를 빌며 기우제를 지내보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지 않는다. 숨을 가쁘게 들이쉬는 물은 이제 흙탕물이 되어간다. 작은 변화를 감지하며 하류로 길을 떠나자고 권고했던 동료들 생각이 떠오른다. 물길이 끊겼으니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다. 웅덩이의 물이 자꾸 줄어들어 몸과 몸이 부닥치면서 상처도 생긴다. 서로 상대방을 탓하면서 자중지란이 벌어진다. 이제는 물이 웅덩이 바닥에 겨우 몇 방울만 있을 뿐이다. 어렵게 들이키는 숨에는 흙이 하나 가득하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더니 깜깜한 색깔로 하늘이 덮인다.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같은 일은 자주 발생한다. 임진왜란은 일본에서 준비하는 변화를 우리가 올바로 인지하지 못하여 발생한 비극이었다. 유럽에서 일어난 유대인 대학살도 설마 가족처럼 정답게 지내던 이웃이 우리를 해치겠느냐는 생각으로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엄청났다. 커다란 변화로 가는 미세하고 작은 흐름을 읽지 못한 결과이다. 석기를 사용하는 부족은 철기를 사용하는 부족에게 당해 낼 방법이 없다. 이웃 부족이 철기로 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 재빨리 돌로 만든 도구를 버리고 철로 도구 만드는 방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스페인이 마야·잉카 제국을 약탈하려고 침공했을 때 스페인의 말과 총으로 무장한 소수의 병사 앞에 나무 몽둥이와 돌로 무장한 그들의 무기는 속수무책이었다. 선한 마음으로 스페인 군사를 환영하였던 수십만 명의 마야·잉카 제국의 백성이 철로 만든 병기로 무장한 몇십 명에 불과한 스페인 병사에게 무참히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고립으로 외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참사였다.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불편하다. 편안함에 안주하면 웅덩이에 고여있는 물처럼 생명력을 잃는다. 익숙한 것에 집착하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내부에서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강압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자연의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삶 속에서 변화는 언제나 불편했다. 친숙한 것과의 이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통한 지적 성숙을 위해 여행하라고 권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도 집에 있는 것보다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을 하면서 자랐다. 어린아이가 생의 처음으로 학교에 가면 불안하고 불편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그들만이 갖는 세력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배우면서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쳐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도 서툴고 문화도 다른 외국으로 유학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불편하다. 성장을 위해 유학을 장려하고 언어와 풍습이 다른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가 강인한 생존력을 기르라고 권장하지만 불안하고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다. 고민의 깊이만큼 성장하기에 고통을 극복하며 생존력을 키워간다. 귀찮지만 많은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삶의 여행에서 많은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바라보면서 변화의 단초를 읽어내기도 한다. 세상의 미묘한 작은 변화에 스스로 대응하지 않으면 세월의 강물에 고립되어 고갈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변화에 노출되는 것은 분명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또한 변화다. 변화는 다른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하는 것보다 세상의 변화 속 어디에 내가 있는지 감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능력이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모든 변화에는 사전에 미세한 징조를 보낸다. 그 징조를 알아차리는 능력은 많은 경험과 훈련과 학습을 통해 몸에 스며들면서 직관력을 키운다. 그것이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로 살게 한다. 오늘의 사소한 선택이 미래의 나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