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偉大한 約束(약속)
추장엽 교수 칼럼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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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6.19  16: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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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偉大한 約束(약속) 〓

 

대학원 석사논문 감사의 글에서..


지난 날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학업을 중단했던 아픈 상처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한테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여 이 아픈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논문을 쓰는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 17세 소녀시절에 나와 만나, 25세에 결혼하여 함께 살면서 한 번도 나에게 투정을 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한 가정을 지키면서 남편 한 사람만을 사랑해 온 나의 아내 하 태수에게 이 한권의 논문을 바치겠습니다. 결혼할 때 결혼선물을 해 주지 못해서 아내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

내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동기는 또 있습니다.
나를 배움의 길로 안내 해준 은인과도 약속을 했습니다.  꼭 박사가 되겠다고.. 
내가 龍山驛(2004. 11. 01일)에 발령을 받은 첫날 , 나의 운명은  그 날부터 天地開闢을 하게 되었다. 하늘이 보내준 天使였다. 그 고객이...........! 나에게 공부를 하라고 강하게 나를 說得 하였다. 生面不知의 사람이고 처음 본 사람인데. 화가 많이 나고 自尊心도 상했다.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런 輕率한 言行을 하는가에 대해 ...! 내 나이가 오십인데. 나보고 공부하라고, 정말 나쁜 사람이구나. 자기가 뭔데 나의 아픈 마음을 더 아프게 할까“  
나의 삶을 뒤 돌아 보았다.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에  自責하고, 살아온 삶이 한 없이 後悔가 되었다.
자녀(4명)들이 大學生인데 내가 대학에 다닐 수 있을까 ? 
그날 이후로 나의 苦悶은 시작 되었다.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決定을 내리지 못하고 彷徨하고 있을 때 그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먼 훗날  나를 怨望할 것이라고.
平生敎育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는 나의 서재 실에 ” 오십대여 일어나라 그리고 도전(공부)하라. 그러면 당신(추창엽)은
반드시 成功할 것이다 “ 글을 붙여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大學校, 大學院을 졸업하고 博士學位를  받아서 그 고객 앞에 설 것이다.   
오픈 대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서울사이버대학교 老人福祉學科에 입학(2005.03월)하여 대학생이 되었다. 나의 나이가 53세였다. 獨學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晝耕夜讀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잠도 2시간 이상 자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서 나와의 전쟁이 치열하게 戰鬪가 시작된 結果 3년 6개월 만에 조기 졸업하는 榮光을 갖게 되었다.
卒業式 날 사각모자를 쓰고  가슴으로 큰 소리 내어 울었다. 卒業狀을 들고 그 고객에게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겨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博士學位를 받고 가겠다는 나와의 約束 때문에 그의 집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지키지 못하는 約束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仙人들의 말씀이 대학원에 進學하는 계기가 되었다. 大學院(光雲大學校)에 원서를 내고 面接을 보로 갈 때는 아내와 함께 갔다.  사이버 대학교를 나온 내가 合格할 수 있을 것인가 ? 하는 緊張된 마음으로 아내의 든든한 후원으로 대학원에 合格하여 나의 希望을 펼칠 수 있었다. 
낮에는 職場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즉 晝耕夜讀의 치열한 삶이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지만 그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一念이 나를 흔들리지 않게 했다.  오픈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과의 競爭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내 靈魂을 불태워 가면서 學校生活을 한 보람이 있어 원우회장을 할 수 있었다.
원우회장이 되어서 離就任式을 세종호텔에서 성대하게 하였으면 첫 모임을 한강고수부지에서 행사 종료 후 한강 유람선을 타고 한강을 유람하면서 대학원생들과의 친분을 다졌다. 리더 자의 마음가짐과 態度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切實하게 깨닫게 하였다.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 교통(자살)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여 論文을 抛棄하고자 했다. 나를 自殺로 몰고 간 친구들에게 선의의 복수를 위해서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大學院 論文 ” 노인방문요양보호서비스 수급자 만족도에 관한 연구 “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그 論文을 가슴에 꼭 켜 안고 그 顧客 집으로 달려갔다. 그 집 앞에서 우뚝 서고 말았다. 추창엽 너 그것 밖에 안되...!  博士學位 取得 후 만나겠다는 그 偉大한  약속을 이렇게 무너지게 하는 가 ?  벅찬 가슴으로 달려간 나의 발길이 또 다시 돌리고 말았다.
( 대학원.  卒業式때 나의 家族과 職場 同僚들의 祝福을 받았다 ) 
대학원(2008.08.24.일)을 졸업 나이기 57세 停年退職(59세)도 얼마 남지 않았다.
교육원(인재개발원)에 가서 나의 思想과 哲學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모 동료가 공부해서 뭐하려고 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敎育院에 가서 敎授가 되겠다고 하니까 ? 그 동료의 말이 너가(추창엽) 교육원에 가면 손가락에 장을 찍겠다는 동료에게 선의의 복수를 위해서도 가야겠다는 강한 意欲이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의 꾸준한 努力으로 韓國鐵道公事 인재개발원(교육원)에 가는 큰 榮光을 갖게 되었다. 인재개발원(2010.04.01.일) 에 첫 출근은 나의 公務員生活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직장동료(교수)들이 대부분 사십대였고 오십대는 저 밖에 없었다.
선배교수님들의 따뜻한 배려로 나이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한 직원의 無視로 辭退書를 제출하였지만 주위 동료들의 만류로 停年退職을 할 수 있었다.
停年退職(2012.12.31.일) 敎育院에서 退職하는 직원은 원장님을 제외하고는 제가 처음이라고 성대하게 退任을 해 주셨다. 퇴임사에서 오늘 제가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십대 소녀 때부터 나 한 사람만을 사랑해온 나의 아내(하태수)에게 돌리겠습니다.  “ 또한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힘과 勇氣를 준 그 고객에게도 감사 하다고   
정년퇴임식을 하는 날 눈이 많이 와서 인재개발원 직원들이 모두 나와서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제가 도착을 하자. 제설작업을 멈추고 일렬로 줄을 서서 ” 축하 “ 한다고  큰 박수를 보냈을 때 함께 온 나의 家族과 公務員 同期들 마을주민들이 지금 생각하니 내가
잘 못 살아오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원장님께서 마련해준 晩餐場에서, 기뻐하는 아내와 가족들 남편을 믿고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 아빠를 尊敬한다는 아들과 딸과 사위 내가 밤 세워 가면서 공부할 때 옆에서 함께 해준 아내 그리고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준 그 고객의  恩惠에 대한 報答을 내가 이 세상에 存在하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갚아 갈 것이라고 다짐도 했다.
이렇게 나의 직장은 끝을 맺게 되었다.


2013.01.01.일자로 民間人이 되고 보니 하늘로 날아갈 듯이 홀가분하였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는 나의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平生敎育을 통해 平生 現役이 되겠다는 나의 바람이 멈출 수가 없다는 結論을 내고 나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셨다. 나를 받아 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매일 술과 친구가 되어 타락의 길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내는 속이 상했는지, 잔소리가 점점 늘어만 갔다.
내가 한平生 몸담았던 鐵道도 나를 받아 주지 않았다. 한국철도운수협회 질서지킴이 모집에 응시했는데 떨어졌을 때 정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한강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있는데 2013.03.27.일 한국철도운수협회에서 전화가 왔다.
예비 1 번이라서 와서 근무하겠는냐고 그 전화를 받고 退職 후 첫 職場을 구하게 되었다. 질서지킴이가 하는 일은 전동차 내 고객들의 保護와 질서유지를 하는 것이다. 
실업자 생활 3개월 직장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을 깨닫게 해 준 나의 산 경험이었다.
첫 봉급 1,250,000원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주면서 ” 여보 고마워요. 당신 덕분으로 퇴직 후 첫 봉급을 받게 되어서요 “ 질서지킴이 업무가 내 적성에 맞지 않아 퇴직 하려고 하였지만 새로운 직장이 구해질 때까지만 다니기로 하고 또 다시 여러 곳에 원서를 내었다.
그 결과 한국철도공사 /코레일네트웍스 채용시험에 합격(2014.09.01.)하여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그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캐나다크리스천대학교 상담학과에 입학하여 박사학위(상담학 박사)를 받게 되었다.. 나의 위대한 약속은 그렇게 지키게 되었다. 약속을 지키게 해준 그 고객에게 지면을 통해 고맙고 감사함을 전한다.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또 약속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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