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금융불안에 우리나라 원화 위상 높아지고 있다

경제 여건과 경상수지 흑자로 외국인투자자 인식 달라져

2013년 5월 이후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 금융불안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원화환율은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거시경제 여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원화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8년과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을 매도하였던 외국인투자자들, 특히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지난해부터는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도 국채 등 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다.

수익성보다는 안전성을 중시하는 중앙은행들의 속성을 감안하면 원화의 지위가 과거에 비해서 달라졌다고 LG경제연구원은 밝혔다. 원화가 안전자산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안전한 자산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이 위험할 경우 국내주식뿐만 아니라 채권까지 팔았던 외국인투자자들이 최근에는 채권매입을 꾸준히 늘리면서, 그 결과 환율의 변동성도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그렇지만 원화의 안전성이 아직은 확고하지는 않다. 외국인투자자의 보유액을 기준으로 주식이 채권의 4배에 이르고, 주식시장에 비해 외환시장 규모가 작아 언제든 환율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이 있다. 지정학적 위험이 여전하고, 중앙은행 대외준비자산에 비해 턱없이 작은 민간부문의 해외채권 보유규모 등 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의 평가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요인이다.

원화 환율의 안정세 보이고 있어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외악재에도 불구하고 국내금융시장은 상당히 견고한 모습이다. 2013년 5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연준’)의 버냉키 전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이후 브라질, 인도 등 대다수 신흥국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흥국으로 몰려들었던 유동성이 다시 선진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감 때문이었다. 연초에는 아르헨티나발 금융불안과 우크라이나의 정정불안 사태가 벌어졌다. 일련의 대외적인 금융불안에도 원화환율과 국내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2013년 이후 주가와 환율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나 2011년 유럽의 재정위기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상당한 혼란을 겪었었다. 원화 환율이 달러당 1,600원까지 치솟기도 했고 주가가 30% 이상 하락하는 국면도 있었다. 따라서 불과 몇 개월의 움직임을 두고 차별화를 운운하기는 다소 성급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주요한 요인은 우리경제의 기초체력이 여타 신흥국뿐만 아니라 재정위기를 겪은 일부 유럽국가에 비해서 나은 편이라는 점이다. 국내총생산의 6%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와 누적된 대외순자산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우리경제로 파급되는 것을 막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낮은 물가상승률과 안정된 자산시장 등 경기상황이 신흥국 경제와 달리 과열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최근의 국제정세 불안이 우리경제와는 관련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안정된 금융시장의 상황을 두고 일부에서는 원화가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도 한다. 국채 및 중앙은행 발행채권(통화안정증권) 잔액중 외국인이 보유한 비율은 2014년 3월말을 기준으로 6.7%, 95조원에 이르렀고, 그중 상당수는 중국, 태국 등의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수익률보다는 안전성을 기준으로 외화자산을 운용하는 중앙은행의 일반적인 행태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채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을 개연성도 감지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국내 주식가격이 어김없이 떨어지고 원화환율은 등락을 거듭하고, 또한 이러한 현상으로 국내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확대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외국인 채권투자 올 3월 95조원 근접 ‘안정적’

외국인투자자들이 보유한 국내채권의 규모는 2000년 1월말 1.5조원에 불과했으나 2007년 중반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해 2008년 5월에는 55조원까지 증가하였다. 그리고 2009년 5월까지 15조원이 감소하였으나 이후 증가하여 2014년 3월에는 95조원에 이르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채권투자는 2007년 이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또한 외국인 채권투자 잔액의 변화를 보면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불안했던 2008년 5월~2009년 5월까지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볼 때 2008년 금융위기 중 한국채권은 안전자산이라기 보다는 위험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실 2007~2008년 외국인채권투자 증가는 국내 조선사 및 주식투자자의 헤지수요 급증에 따른 외환시장 불균형에 의해 촉발되었다. 조선사 등은 환율급락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선물환, 통화스왑 등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하면서 은행부문의 대규모 달러 차입수요를 유발시켰다.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미래에 받을 달러를 현재 시점에 매각함으로써 환율변동으로부터 원금을 보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원화의 국제적 위상이 점차 높아지면서 2008년과 같은 환율 급변동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매수 증가는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 국내주식과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나타나는 환율의 자동안정화 메커니즘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금융정책 측면에서도 외국인의 채권매수 증가로 인해 장단기 금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통화정책의 효과가 과거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요한다고 LG경제연구원 정성태 책임연구원은 밝혔다.

도움 :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