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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분노, 희망
임만성
새해가 올 때마다 우리는 새 희망을 꿈꾼다. 멀리 동해바다까지 가서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새해의 소망을 기리기도 한다. 나는 직접 동해바다를 못 갔지만 그곳에 간 고교 동창이 직접 사진을 찍어 보내준 덕에 새해의 일출을 보았다. 어둠을 밝히며 떠오르는 빛, 많은 이들이 그 빛에 새해의 소망을 담아 보았다.
새해가 되면서 언론지상을 통해 접하는 소식들이 어둡다. 땅콩회항사건, 사회 곳곳에 만연한 갑질횡포, 아버지의 전 가족 살해, 안산인질사건, 어린이집 폭행사건, 새해 벽두에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들의 주된 이슈는 쌓인 분노 쏟아내기 였다고 한다.
내가 어려서 보았던 영화 중 가장 즐겨보았던 영화가 왕우가 주연한 중국 쿵푸영화들이다. 주인공은 어려서 가족들이 적에 의해 몰살당하고 소림사에 들어가 무술을 익히고 고수가 되어 언젠가 결국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는 것이 통상적인 줄거리이다. 복수는 언제나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복수할 날을 기다린다. 과거 내가 자라던 시절 억울하면 출세해라라는 말이 대세였다. 그리고 그 때는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학교를 다녀도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를 들어 갈 수 있었다. 대학을 못가도 열심히 공부하면 고시에 합격할 수도 있었다. 소위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일류명문대에 들어가려면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특별 코스를 밟아야 한다. 고시에 붙으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한번 안풀리면 끝까지 안풀리고 그러니 더욱 더 억울하다. 그런데 복수할 기회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한의 역사라고 한다. 뜻으로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옹께서는 우리 역사에는 있는게 가난과 고난밖에 없다고 하셨다. 중국이나 로마나 터키나 페르시아가 세웠던 것 같은 그런 큰 나라를 세워본 적이 없고 국제무대에서 주역이 되어 본 적도 없다. 세계에 뛰어나는 자랑거리를 가진 것도 없고 세계 역사에 큰 변화를 준 일을 한 것도 없다. 강대국들의 사이에 낀 반도국으로 수많은 침략 전쟁을 당하였다. 끊임없는 당쟁의 역사속에 수많은 민족의 영웅들이 억울하게 죽었다.
나는 비교적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다. 쉽게 화를 내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이해를 잘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내 생각에는 참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다. 분통이 터졌다. 그렇게 되니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났다. 운전하다가 길이 막히면 분노가 터졌다. 그제서야 분노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많지 않지만 그래도 세계 여기저기 나라들을 다녀 본바 있다. 우리 민족이 고난을 많이 당해서 한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세계를 다녀보면 우리 민족 만큼이나 고난을 당한 나라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독 한이 많을까? 분노의 밑바닥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삶의 사연들이 있다. 같은 고난을 당해도 억울하다고 느끼면 한으로 남고 분노의 상처를 남긴다. 한이 많은 우리 나라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장담컨대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속에서 우리가 참으로 많은 억울한 일들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라진 고조선의 역사속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쩄든 우리에게는 분노의 상처가 유전처럼 흘러내린다.
필립 얀시가 쓴 책에 보면 분노의 상처속에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데이지의 삶의 스토리가 나온다. 평생 술주정뱅이가 되어 아이들을 걷어차면서 학대하고 어머니를 집에서 쫓아내버리고 개망나니처럼 살았던 아버지. 데이지는 그런 아버지에 대해 평생 증오와 원한이 사무쳤다. 나중에 어른이 된 후 아버지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며 찾아와 용서를 구할때도 결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죽기전 바로 집 몇 블럭건너에서 사경을 헤멜 때도 “그 남자는 결코 다시 보지 않는다”고 다짐하며 찾아가지 않는다. 결국 세월이 흘러 데이지가 할머니가 되고서도 그의 딸 마가렛의 삶에서 그리고 그의 손자 마이클의 삶에서도 분노와 원한의 사슬은 가계의 DNA에 박힌 결함처럼 끊쳐지지 못하고 전해져 내려간다. 결국 그 집안의 불행은 대를 이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끊지 못하면 영원히.
분노는 복수를 해야 속이 시원하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복수를 위해 칼을 가는 사람은 결코 내리지 못하는 에스컬레이터에 타고 있는 사람과 같다고 한다. 결국 분노는 복수를 통해서 결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오염된 공기를 마신다. 그러나 그 오염된 공기는 결국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분노의 공기를 마시며 산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한다. 그리고 우리 자녀와 그들의 가정과 그들의 미래의 행복마저도 병들게 한다.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그것은 용서이다. 솔제니친은 관계의 새 출발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것이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라 했다. 냉혹한 본성의 법을 초월하는 가장 비본성적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용서하지 않을 때 그는 과거의 감옥에 갇히며 변화의 잠재력은 완전히 차단된다고 한다. 그래서 용서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로 치유받는 최초의, 그리고 많은 경우,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이다’. 필립 얀시의 책에서 유대인 랍비는 “미국에 오기 전에 아돌프 히틀러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새 나라에까지 히틀러를 품고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분노의 사회학이다. 사회적으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는 진단이다. 많은 이웃들이 억울한 고난을 당한다. 그리고 집단적으로 분노를 터뜨린다.
고난에는 뜻이 있다고 믿어보자. 고난의 과거가 나의 위대한 미래를 만든다고 믿는다면 희망이 있다. 우리 삶의 수 많은 억울한 이야기들 속에 깊은 뜻이 있다고 믿어보자. 우리를 아프게 한 그들을 용서해보자.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못하는 이 사회를 용서해보자. 용서는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나를 자유케 한다.
새해가 이제 시작 되었다. 새해에 새 삶을 살자. 우리 사회는 아직 어둡다. 그러나 그 누가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