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제암리

강미경(시인, 여행작가)
  
 며칠 전 늦은 밤.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두렁 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들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그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기차를 타고 32분 만에 수원역에 도착. 시외버스로 두렁 바위 마을로 향했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그곳은 해마다 봄이면 마을 뒷산에 복사꽃과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나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농사를 짓거나 염전에서 천일염을 만들어 궁궐 소금창고의 역할을 했던 곳. 조금 떨어진 송산면 마산포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가 뜨던 곳. 신라 때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해골 물을 마시고 득도를 한 곳도 이곳 화성(華城)땅이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초록의 봄을 기다리는 겨울 들판이 넓게 펼쳐진 제암리 마을, 나는 95년 전으로 타임캡슐을 타고 들어가 본다.

 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경에 제암리 교회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소총으로 완전 무장한 일본군 아리타 중위를 필두로 하여 군인 11명, 순사1명, 순사 보조원 조선 사람 조희창 등 한 무리가 마을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며칠 전 발안 장터 만세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심한 매질을 한 것을 사과하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며, 예배당으로 마을 남자들을 모두 모이라 했다. 교회로 오지 않은 이들은 가가호호 방문하여 불러내었다. 마을 사람들 명단을 이미 다 파악하고 온 것이었다. 아리타 중위가 교회에 들어가 몇 마디를 하고 나오자마자 그들은 교회당 안으로 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예배당 안에 모인 남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무차별 사격을 퍼붓고 난 日軍들은 짚으로 이엉을 얹은 예배당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예배당 문에 나무판자를 대고 못질을 한 뒤였다. 
예배당 안 사람들의 손발과 머리카락 옷자락에 불이 붙고 육신이 타들어 갔다. 목사님이 설교하던 강대상 밑으로 난 구멍을 통해 한 청년만이 콩밭으로 몸을 숨겨 유일하게 살아났고, 그 청년은 그 길로 마을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를 제암리 기념관에서 문화해설사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경기도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은 화성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으며 가장 활발하고 격렬했다는 설명을 기념관 관장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 이곳 화성 사람들은 예부터 개척 정신이 강하고 적극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땅을 간척하고 염전을 만들어 열심히 사는 악착같은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유난히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일본인들의 상점과 집, 일본인 소학교까지 있었답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간척지를 개간하면서 우리 조선인을 간척지 매립작업에 동원하여 착취했었죠. 송산면 마산포에서 일본으로 쌀을 실어가는 것을 보며 조선인들의 울분이 쌓였죠. 화성에 있는 염전마저 일본이 강점하며 조선인이 염전을 하려면 소금제조면허신청서를 내라는 등 화성 사람들의 밥그릇을 몽땅 빼앗아 갔죠 ” 
그래서인지 경기 화성에서 일어난 독립운동만큼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것은 없었다. 밤마다 방화수류정에서 봉화를 올리고 지식인과 학생 수백명이 독립운동을 했고, 3월 28일 사강리 만세 운동 때는 일본 순사 노구찌를 돌과 몽둥이로 쳐서 타살하게 된다. 
 3월 30일 발안 장날의 만세 운동에는 화성주민 대부분(약 2,500명)이 참여하여 일본인의 면사무소와 점포, 우체국, 소학교에 돌을 던지며 그곳들을 불태운다. 그들은 급기야 장안면 면사무소, 우정면 면사무소에 이어 화수리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 순사 가와바타를 또 돌로 쳐서 죽인다. 빼앗긴 나라를 돌려달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본 순사에게 돌을 던졌던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짓밟힌 자로서 짓밟은 자에게 저항한 것이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 정부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공권력에 대한 강한 반발이었다. 밥그릇을 빼앗긴 힘없는 조선인들이 할 수 있는 항의의 강한 표현이었다.

화성군 향남면 두렁바위 밑, 제암리는 천도교의 교세로 민족정신이 고양된 곳이었다. 제암리 교회에서는 문맹퇴치 교육이 이뤄졌으며, 홍원식(대한제국 시위대 해산군인)이 낙향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여 구국동지회를 만들어 민중저변의 의식화가 상당히 이뤄졌던 마을이었다. 또한, 수원 화성지구나 전국에서 천도교 성미(誠米)를 가장 많이 바칠 정도로 천도교 신앙이 불타던 곳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터 독립 만세 운동 때도 안정옥(제암리 주민)과 김흥렬(고주리 주민), 백낙렬(수촌리 주민) - 천도교의 전교자 3명과  이정근(팔달면 가재리 주민)이 유학자로서 만세 운동의 주동적인 역할을 했다. 이 사실만을 보아도 이곳 화성 지역에서 천도교와 유교의 정신이 고양되어 독립운동에 적극성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두렁바위 마을은 예부터 순흥 안씨들이 많이 거주하는 집성촌이었다. 4월 15일 제암리 예배당에서 죽은 27명 중에 천도교 신자가 11명, 기독교 신자가 10명, 무교인 사람이 6명이었다. 그 중에 순흥 안씨가 15명, 김씨가 4명, 홍씨가 2명, 조씨가 1명, 강씨가 1명이었다. 강태성의 부인과 홍원식의 부인이 예배당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남편을 염려하여 왔다가 함께 사살된다. 어떤 기록에는 일본군이 총을 쏘아 죽였다고 하고, 전동례 할머니의 증언에는 여자를 무릎 꿇게 하고 목을 칼로 내리쳐서 죽였다고 한다. 

 사건 당시,  그 소문을 듣고 불탄 교회당과 시신을 카메라에 담아 미국 본부에 보낸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영사관 커티스, 노블, 일기에 기록한 선교사들의 부인. 그리고, 겁에 질려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마을에 와서 시체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준 캐나다의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있다. 마을에서 4km 떨어진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시신을 묻고 [끌 수 없는 불꽃]이라는 책을 내어 이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을 했다. 일본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방화한 이야기는 제 3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카메라 셔터에 실려 사진과 책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82년에서야 국가차원에서 그들의 유해를 발굴했을 때, 검은 덩어리들이 뭉쳐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들은 죽으면서도 하나로 단결하여 뭉쳐서 죽었던 것이다. 나라를 사랑함에 있어서 죽을 때도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로 단결해 있던 그들이었다. 이글을 읽는 이들 모두, 종교를 너머서 그들의 27위 합동묘에 마음의 국화꽃을 바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