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에 다녀와서
                                             姜 美京
                                       
아침 일찍 서둘러 청량리역에서 부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양평을 지나 단양을 거쳐 풍기역에 내렸다. 조촐한 시골역의 정취가 느껴졌다. 기다리고 있던 여행사 버스에 올라 부석사로 향했다. 어제 저녁 밤늦게까지 부석사에 대해 공부를 해왔던 터라 구석구석 돌아볼 욕심을 안고 가슴이 벅찼다. 

 가을이면 은행잎이 절경이라는데, 2월의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어쩌면 요즘의 내 심경과 흡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사과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부석사 오르는 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호박고지 - 늙은 호박을 얇게 썰어서 말린 것도 눈에 뜨이었다. 호박고지를 보니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할머니 생각이 났다. 겨울이면 호박고지를 넣고 팥을 삶아 시루떡을 만들어 주셨던 할머니 생각에 코끝이 매웠다. 옹솥에 시루를 얹고 장작을 때시면서 직접 떡을 쩌 주시던 할머니는 어디에 계실까? 할머니 생각을 하느라  왼편에 서 있던 당간지주를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서야 유명하다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발길을 멈췄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 깃발을 메달아 놓는다는 일종의 돌기둥이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 구절에 “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을 올리지 못하고/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사실, 이 시 구절 때문에 부석사를 찾아오지 않았던가? 절이라면 어느 절에나 있어야 하는 돌기둥이었다. ‘ 평생을 앉아 ~ ’라는 구절을 묵상하면서 천왕문을 지나 안양루로 올라갔다. 안양(安養) - 편안한 땅 곧 낙원, 극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안양루를 경계로 피안과 차안이 갈라진다고 했던가? 
 
 신라시대 문무왕 때 지었다는 천년 고찰 부석사가 봉황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다. 팔삭지붕의 아름다움과 비례의 정교함, 말로만 듣던 배흘림기둥, 연꽃잎 위에 세워진 석등 - 네모로 뚫린 공간을 통해 무량수전을 보니 더 아름다웠다. 고려 말에 공민왕이 썼다는 ‘무량수전’이라는 현판이 거의 800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검은색 정사각형 액자에 하얀 글씨! 無量壽 - 지혜, 불멸, 영성을 모신 곳이라 해서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 했다. ‘수(壽)’는 목숨을 의미한다고 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을 여기서도 본다는 생각을 하면서 배흘림기둥을 안아 보았다. 아래와 위는 갸름하고 중간부분만 배가 불룩하게 나온 임산부의 늘씬한 몸매 같았다. 시선의 안정감을 위해서 이렇게 만들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딱딱하게 각이 분명한 사각 기둥에 비해서 왠지 편안하고 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중년 여인의 몸매처럼 편안함이 느껴졌다. 천 여 년의 세월(1336년) 동안 비바람, 눈, 서리, 천둥번개 속에 버텨낸 세월의 흔적만큼 쩍쩍 갈라진 나뭇결. 그 고풍스러운 자연미! 비경(秘境)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내신 고(故)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이 생각났다. 
 나도 배흘림기둥에 기대보았다. 앗!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안양루 뒤로 펼쳐진 소백산맥과 맑아서 파란 하늘! 이런 장관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오늘따라 하늘은 맑아 멀리 흰 구름이 하늘을 예쁘게 수놓고 있었고, 하늘, 산, 산과 산이 줄을 이어 무량수전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산들이 간격과 줄을 맞추어 열병식을 하고 있는 광경이라니!

 새벽잠을 포기하고 경북까지 오길 너무 잘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한참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소백산에 홀려 있다가 무량수전에 앉아 계시다는 국보 45호를 기억해내고 살그머니 문을 열어보았다. 절을 올리고 계시던 분이 “ 추우니 들어와 보세요 ”라고 했다.‘부처님이 계신 법당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잠시 망설였으나 소조아미타불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공부한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나도 모르게 몸은 이미 법당 안에 들어가 있었다. 
 차가운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국보 45호를 응시했다. 정말 모습이 아름다웠다. 무서울 줄 알았는데 마음이 편안했다. 
‘모든 집착을 내려놓게 해 주세요. 모든 욕심을 버리게 해주세요. 00분과 화해하고 소통하게 해주세요.’ 나도 모르게 부처님께 빌고 있었다. ‘기독교 신자이면서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았다. 국보 45호 부처님의 모습은 황홀하도록 나를 홀리고 계셨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태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느 절에 가 보아도 대웅전에 모든 부처님들은 문을 향하여 앉아 계셨는데, 여기에 계신 부처님은 옆모습을 보이며 앉아 계셨다. 왜 그럴까? 다음에 가면 그곳 스님께 꼭 여쭤볼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큰 절 올리는 대신 허리를 꺾어 인사를 드린 후, 절 왼편에 있는 부석(浮石)을 보러 갔다. 
돌이 서로 붙어있지 않고 떠 있다는 부석! 참 재미있는 돌이었다. 선묘낭자와 의상 대사에 대한 전설을 계속 묵상하면서 ‘여자들이란 낙랑공주나 선묘낭자나 자신의 조국보다는 사랑하는 남자 한 사람이 더 소중한가?’하는 생각을 하다가 목숨까지 초개같이 버린 선묘낭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드는 양가감정 속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 요즘처럼 사랑도 인스턴트식 사랑법과 계산된 사랑, 거래처럼 되어버린 사랑 방정식 앞에 선묘 낭자를 놓고 보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 1330여 년 전 신라와 당나라 때 이야기니까 그럴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마음 한 켠의 소리였다. 신라시대 사랑이나 오늘날의 사랑이 본질에 있어서는 같지 않을까? 내가 하고 있는 사랑, 우리들이 하고 있는 사랑, 아니, 우리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심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선묘각을 들러 보았다. 
무량수전 뒤편에 작은 집이 있었다. 한 사람 정도 들어가서 선묘낭자 초상 앞에 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사각형의 공간이었다. 정면에 어여쁜 선묘낭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고운 모습이었다.
 문득 시상이 떠올라 ‘선비화禪扉花’라는 시를 지었다.

   
    선비화禪扉花
                                                笑耳 姜美京
지팡이 하나
천 미터까지 땅 속 내려 
그대 모신 조사당 앞에 깊습니다
천 년이 넘도록

짚고 다니던 지팡이라도  
꽂아
보답처럼 꽃 피게 하셨는가

선비화 곱게 필 제 
다시 태어나시올손 
그대여 
선묘에게 눈길이라도 한번 주소

당신 등주 땅 떠날 때
용이 되고
당신 무량수전 지을 때
바위 되어 적수들을 부수었던 
선묘 낭자 
잔잔한 달빛으로 
맑게 피어납니다 해마다 
천 년이 넘도록

천년을 넘은 사랑
천년을 넘은 깊이
잔잔한 샛노란 달빛으로
맑게 피어납니다 해마다 
천 년이 넘도록

* 선비화 : 골담초(骨擔草)라고도 한다. 영주 부석사에 가면, 의상대사의 사당(조사당)앞에 선비화가 있다.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해마다 샛노란 꽃이 핀다고 한다. 잎을 따서 달여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있어 방문객들로부터 보호를 위해 철책을 둘러놓았다. 선묘낭자와 의상대사에 대한 전설과 함께 전해지는 신기한 나무이다. 꽃말은 겸손이다.
   
선묘각 오른쪽에 삼층석탑을 돌아 한참을 올라가자 선묘각에서 뚝 떨어진 곳에 조신당 - 의상대사의 사당이 있었다. 의상대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나무로 조각되어 있었고, 뒤편에 대사와 옆 편에 낭자의 초상이 여전히 의상 대사 옆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나라 고종이 신라를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하여 문무왕이 의상 대사에게 무량수전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런데, 절 왼편에는 선묘낭자의 변신인 부석, 오른편 선묘각에는 낭자의 초상, 뚝 떨어진 뒤편에는 의상대사의 사당과 낭자의 초상이 걸려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신라를 치려했던 당나라, 당나라 여인 선묘! 선묘는 적국의 여인이었지만, 의상대사가 신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사찰 - 무량수전을 짓는데 지대한 공로를 한 여인이었다. 목숨을 던져서까지 용이 되고 바위가 되어 마음 준 사람을 도와주었던 천사였다. 
 이런 사랑을 우리들은 할 수 있을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의상 대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살아서 의상대사의 눈길 한번 받아보지 못하던 선묘낭자는 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여러 사람들의 눈길을 받고 있다. 의상대사의 사당에 함께 떡하니 모셔져 있으니 말이다. 죽어서 아름다운 여인...... 자신을 죽여서 아름다운 여인 선묘. 그녀의 사랑이 참 예쁘다. 
 남자들 가슴 속에는 항상 일이 있고, 여자들 가슴 속에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남자의 사랑은 일순간이고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여자는 사랑을 위해 전 생애와 목숨까지 바친다고 한다. 어리석도록 의상대사를 사랑한 여인, 선묘. 그래도 그녀는 천년이 넘도록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을 수 있구나! 여자를 옆에 둘 수 없는 처지와 신분인 의상대사, 천년이 넘게 그 옆에 있을 수 있는 여인 선묘.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을 도운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한 사당 안에 국사(國師)의 초상과 여인의 초상을 나란히 걸어주고 있는 후손들의 마음도 또한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석사는 아름다운 것 투성이였다. 국보와 보물,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는 곳 - 무량수전과 배흘림 기둥, 국보 45호 부처님,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소백산의 아름다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부석사에 당장이라도 다시 달려가도 싶다.  무량수전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발레리의 성지순례가 떠오른다. 순례 후 그는 성당의 세 가지 종소리를 가슴에 담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종소리들이 인생을 재음미하는 효과음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여음에서 빌린 리듬으로 그 동안의 몽매한 가락을 교향곡으로 변주하여 삶을 다시 보는 눈을 떴다고 했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뜻에서‘발견’과‘눈뜸’에 있는 것이 아닐까......여러 archtype(원형) 중에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기 이전의 자신은 죽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 힘을 얻어 새로운 자신으로 재탄생(re-birth)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일상에 지치거나 뭔가 마음이 답답할 때면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한다. 미지의 세계에 자신을 내려놓고 싶은 것은 아닐까? 손에 움켜쥐고 있던 여러 무거운 삶의 무게를 여행지에 내려놓고 쉼을 얻고 새 힘을 얻어 다시 돌아와 새로운 기분으로 삶에 임하고 싶은 열망.....그것은 누구나가 가슴 속에 갖고 있는 욕구일 것이다. 구지 비용을 많이 들이는 먼 외국으로의 여행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가까운 근교의 어떤 곳. 그곳이 공원이어도 좋고, 역사 유적지여도 좋고, 기차를 타고 산과 바다를 찾아가는 것이어도 좋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벅차고 설레는 일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들뜬 기분으로 떠나보자. 
그리고, 여행에서 얻은 여러 체험들을 담담하게 글로 써보자. 일기를 쓰듯.
이 얼마나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일인가? 
        
     
   여행
                                             笑耳 姜美京 
나로부터 떠나 너를 만나고
너로부터 떠나 나를 들여다보는
우물 속엔 풍경이 있고
네가 있고
또 하나의 내가 있었다

나를 비워내는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아무리 찾아다녀도 만날 수 없던 
뜨거운 파랑새, 
너 .......
내 안에 있었다

*제7회 국민일보 신앙시 입상작 

너의 문 밖에서                  
                                                      강 미경
이제는 아주 작은 풀꽃만을 사랑해야지
비록 
불 꺼진 네 문 밖에 세워졌다 해도

너의 집
콘크리트 벽 틈새에서 용사(勇士)처럼 자란
손톱보다 작은 제비꽃을 사랑해야지

물살 거친 개울에 징검돌을 놓고
돌아올 너를 기다려야지

“돌아갈 용기가 없다오” 
돌아오지 못하는 새처럼 
탱자나무 그늘에 움추린 묵음의 너

언제든 돌아올 너를 위하여
산모롱이 지나 *삭쟁이라도 꺾어
아궁이 군불 지펴놔야지

생강바람 부는 언 겨울을 절망하며 
떠난 너에게
성급히 떠난 너에게 

*삭쟁이 : 마른 나뭇가지라는 뜻의 충청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