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봄이 오기전에

신수희

명자나무 줄기가 한들거리는걸 보니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 창밖에 보이는 한그루의 푸라타나스 나무도 가지마다 많은 방울들을 매달고 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 잎은 돋지 않았지만 가지들과 방울들의 어울림은 지난해의 울창하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찬바람이 불던 겨울도 지나가고 어느새 봄이 가까워졌는지 하늘에는 봄바람이 불고 가끔 눈이 내리기도하며 또 이삼일이 멀다하고 비가 오기도한다.

잔잔한 바람과 함께 대지를 적시는 봄비는 뭉쳤던 뿌리들과 얼었던 땅을 갈라 놓을것만같고 작은 이파리들은 지금이라도 터질것처럼 나무줄기에 돌기를 뿜어내는것처럼 보인다. 버들강아지가 바위밑에 몰래 흐르는 물소리에 얼굴을 내밀것같이 봄이 오는 소리에 겨울잠을자고 일어나는 꽂들의 들릴듯 말듯한 이야기 소리는 잎새들의 숨박꼭질같다. 어쩜 비오는 봄하늘은 새싹을 내기위해 몸부림치는 잎새들에게 기지개를 펴게하는지도 모른다.

계절따라 움직이던 내 마음에도 봄이 다가오는지 공연히 하늘 높이 떠있는 흰구름을 바라보면서 남아있는 나만의 시간을 쪼개보기도 하고 아름다웠던 지난 시간을 되돌리기도 하면서 봄의 소리에 눈이 멀고있다. 파란 하늘 끝까지 터지지 않는 고무풍선처럼 봄물이 들은 분홍마음은 아무런 욕심도 공허함도 없이 채워지지 않는 나 혼자만의 자유라고나할까. 텅 빈 마음속에 느끼는 한가로운 여유이다.

아직 녹지 않은 시골집 마당에 잠자고 있는 수련도 땅밑에 꼭꼭 숨어있는 수선화도 튤립도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 모두다 깨우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발걸음은 언제 다가갔는지 꽃 잔치를 벌이고 있는 봄꽃시장에 슬며시 찾아가서 이꽃골목 저꽃골목에 피어있는 많은 꽃들을 쳐다보면서 완연한 봄의 그리움에 헤매고 있다.

작은 잎사이에 깨알같이 피어난 빨간꽂, 국화 잎파리같은 줄기에 비단처럼 부드러운 보라색꽂이 눈을 부시게한다. 조그만 바위위에 찰싹 들어붙어있는 작고 청초한 풍란은 바위에 붙은 이끼마냥 남자곁에 떨어질 줄 몰랐던 지난날 내 모습 같기도 하고, 고개를 숙인 할미꽃은 세상을 다 갖을것같은 딸아이가 공부를 팽게친채 헤메는 못난 모습을 숨기고 살았던 내 엄마의 괴로움 같아 어느새 못난 딸이 되어가고 있다. 긴 꽃대에 한송이만 핀 큰 꽃은 자만심을 가진 욕심쟁이가 되는것같아 괜히 미워지고 서로 어울려서 아기자기 마주보고 웃고 있는 꽃마당은 식구들과 다정스레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행복을 느끼게한다. 줄기를 가누지 못하고 올망졸망 꽃잎을 달고 고개를 숙이고 피어있는 작은 주홍꽃은 마치 많은 가족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가장같이 측은한 생각이 든다. 도도하게 피어있는 노란꽃은 필요없는 자존심에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살아가는 높은 사람 모습마냥 쓸쓸하기도하다.

해마다 봄꽃이 피고지고 생성과 소멸이 변함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순리는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소멸을 가르쳐주고 사람들이 미쳐 생각지도 않았던 작은것까지도 미리 예측하고 반성하게하는 예언자처럼 많은 것을 예시해준다. 이제는 하루하루의 삶도 자그마한 꽃의 어울림처럼 서로 낮아지고 작아지고 어울려가면서 친구처럼 다정스레 피는 꽃이 진정 아름다운 모습처럼 생각된다.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꽃들 속에 자신을 마음껏 숨겨보면서 잠깐이나마 세상에 오염됐던 탁한 마음을 버릴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맑아지고 평온해지지 않을까.

오늘 오후, 채 봄이 오기전에 꽃이 만발한 꽃시장에 미리 피어있는 많은 봄꽃을 보면서 내주위의 꽃과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있다. 봄으로 채워지는 아름다운 꽃들은 많은 그리움까지 끝간데 없이 만들어 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