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 칼럼](1)
 

“벚꽃과 한일 간의 이야기”

최재철 (한국외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

  이제 벚꽃의 계절이 지나가고 신록의 5월을 맞이한다. 초록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는 「신록 예찬」을 연상하게 하는 다양한 초록이 우리의 눈을 싱그럽게 한다. 원고를 의뢰받을 무렵엔 벚꽃이 한창일 때라 벚꽃 이야기로 가는 봄의 아쉬움을 달랠 겸 송춘(頌春)의 글로 이 칼럼을 시작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예로부터 일본사람들의 벚꽃사랑은 유별나다. 봄이 되면 각 언론사는 매일매일 어디 벚꽃이 몇 부 정도 피었나를 보도하고 전국의 벚꽃 명승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도쿄 우에노(上野)공원에서는 명당자리잡기 경쟁으로 새벽부터 진을 친다. 일본 고대인들에게 곡식의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기도 했던 벚꽃은 과자와 음식, 의상(키모노)은 물론, 그림과 시의 소재로도 일본인에게 오랜 세월 친숙하다. 한꺼번에 활짝 피었다가 일제히 지는 데서 무사도의 기질을 이은 일본인의 집단적 속성을 찾기도 한다. 벚꽃이 활짝 피어있을 때뿐만 아니라 눈처럼 바람에 흩날리며 지는 모양과 뜰이나 연못에 자욱이 떨어진 꽃잎을 보고도 인생의 애수를 노래한다.         
  일찍이 신라 향가와 비슷한 시기의 일본 고대가요집 『만엽집(万葉集)』(8세기)의 ‘계절가’를 모아 편집한 제8,10권 등에 20수 정도의 벚꽃 노래가 실려 있다. 이즈음에는 중국 한시의 영향으로 봄에는 매화를 더 많이 읊던 때였다. 한수 옮겨본다. 

        멀리 내다보니 / 카스가(春日)의 들녘에 / 봄 안개 일고 
                        피어 향기 나는 건 / 벚꽃(?花)이로고

  이후, 헤이안(平安)시대에 정형 단시 와카(和歌)를 사계절별로 편집한 『고금와카집』(905년)에서는 ‘봄의 노래’ 130여수 중 과반수인 70여수가 벚꽃 노래일 정도로 가장 많이 애창하는 꽃으로 정착하게 된다. 

        벚꽃이 / 빨리 진다고 / 생각지 않네
                 사람 마음이야말로 / 바람 불 새도 없어라  
        (?花とくちりぬとも思ほえず人の心ぞ風もふきあへぬ) 

  피었다 쉬 떨어지는 벚꽃보다도 빨리 바람도 불기 전에 변하는 사람 마음의 속절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앞 노래의 자연(꽃)을 보고 느낀 그대로의 감동보다는 꽃을 인생과 결부시켜 노래하는 특징이 있다.
  근대 일본인들 예를 들면 단가 시인 요사노 텟캉 같은 우파 지식인은 식민지 조선에 일본 벚나무를 이식하는데 적극적인 동조자였다. <한국 산야에 / 벚나무를 심어 / 한인들에게 // 일본 대장부의 / 노래 부르게 하리>(1895년) 라고 식민자의 얼굴을 드러내는 단가를 읊었다. 그런 반면,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에서 서양철학을 15년간 가르친 바 있는 아베 요시시게는, <내지인(일본인)은 사는 곳 가는 데마다 벚나무를 심으려 한다>(1932년) 고 꼬집은 바 있다. 해방 후 벚나무는 일제의 잔재라고 청산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실은, 일본의 대표적 벚꽃 품종 ‘소메이 요시노(染井吉野)’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사실은 1933년에 일본인 식물학자 코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가 논문에서 밝혔고, 1908년 프랑스 에밀 타케 신부가 한라산 중턱에서 채집한 왕벚나무를 베를린대학 괴네 교수가 자생지로 확인한바 있으며, 고려시대 팔만대장경 판목이 대개 산벚나무로 되어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져 있다. 삼림청에서 DNA 분석을 했고,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왕벚나무. 우리 옛시조에 벚꽃 노래가 거의 눈에 띠지 않는 것은 아쉽다. 조선의 선비들은 주로 복숭아꽃(桃花)과 사군자 매난국죽(梅蘭菊竹), 소나무 등을 소재로 충절과 고고함을 노래했다. 최근엔 중국이 벚꽃 원산지라고 근거가 애매한 주장도 한다니, 현재의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의 역학관계가 일테면 ‘벚꽃 3국지’에도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근세 일본의 대표적 방랑 하이카이시인 마츠오 바쇼를 인용할 것까지도 없이, ‘꽃은 꽃으로 보고 달은 달로 보면’ 되지 않는가? 한일 상호 이해와 공동 번영을 위해, 벚꽃을 사랑하는 이웃의, 사실을 사실로 보는, 양식에 기대해마지않는다. 나아가, 한중일 3국의 상호 협력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의 기본이며 지구촌의 미래를 위해서도 긴요하다는 인식의 공감대 확산과 소통의 실행에 모두 함께 동참해야 할 때다. 
  벚꽃은 피고 지고 세월도 인걸도 흘러가지만, 아시아의 강산(江山)은 거기 그대로 여전하다. 
                                                                                 (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