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6
[ 프랑스 혁명을 이끈 커피와 카페 ]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외부권위가 아니라 자발적인 이성을 통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이성의 힘을 외부에 적용하여 자연과 인간사회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그 연결고리를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의 교환’을 통해서 자연을 정복하고 동시에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경제적 메커니즘의 합리성, 즉 유용한 교환을 통해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그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인간은 서로의 생각을 교환함으로써 자신의 오류를 수정 보완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사교를 통해 교류의 즐거움도 만끽하며 세련된 감성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18세기의 철학자들은 정신과 감성의 자유로운 교환 방식이 행복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로 행복을 뜻했다. 이처럼 과거의 철학자들이 고매한 성찰을 위해 고독을 찾았다라고 한다면,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개인의 감성과 사회에 유용한 생각을 즐겁게 교환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일과로 삼았다. 그들이 가장 즐겨 찾은 장소는 바로 카페였다.

‘악마의 음료’에서 ‘자유사상 촉진제’로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고 이슬람 문화를 거쳐 전세계로 퍼져나갔던 커피는 때론 전쟁의 산물로, 때로는 경제적 목적으로 시대마다 각기 다른 기류를 타고 다양화 했던 그 행보는 드라마틱하다.

커피가 유럽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이다. 유럽인들은 커피를 두고 아랍인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라는 이유로 ‘악마의 음료’라고 비난하였지만, 커피를 접하였던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커피에 세례를 내리게 된다.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을 이교도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유감이라 하면서 세례까지 내리게 되었지만 이후 역사는 교황의 판단에 상상치도 못할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는 유럽에 확산되기 시작한 커피가 기독교의 교권에 반대한 계몽주의 운동에 촉매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계몽주의의 싹이 튼 영국에서는 1650년경부터 커피가 수입되어 소비되기 시작했으며, 옥스퍼드와 런던에서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던 커피 하우스에 철학자, 문인, 정치가들이 모여들면서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점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1676년에는 찰스 2세와 왕국에 대한 불경죄를 구실삼아 커피하우스를 폐쇄할 것을 명령했지만 반발이 너무 커서 칙령을 철회하기까지 했다. 또한 ‘마농 레스코’의 작가 아베 프레보가 영국을 방문한 후 “정부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커피 하우스는 영국의 자유를 위한 의자”라고 말했을 정도로 커피하우스는 영국의 정치 지형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차가 수입되어 커피를 밀어내게 되었고, 이후 영국과 항상 대립하던 프랑스가 명실상부한 카페의 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파리 최초의 카페, 카페 프로코프

 
[ 저녁식사를 하는 철학자들 ]
계몽주의의 지도자(손들고 있는)였던 볼테르와 달랑베르, 디드로 등의 당대 철학자들을 그린 상상화. 장 위베르(Jean Huber) 作

파리에서 커피의 소비가 본격화된 것은 1669년 술탄 메흐메드의 대사인 ‘솔리만 아가’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그는 ‘천일야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자신의 아파트에 파리의 명사들을 초대하고 이들에게 터키풍 커피를 대접하여 커피를 유행시켰다. 파리의 거의 모든 귀부인들이 그에게 깊은 호기심을 품게 되었는데, 그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몰리에르가 ‘평민귀족’에서 이러한 풍조를 비꼴 정도였다고 한다. 마침내 아르메니아인 파스칼이 1672년 파리에서 최초의 카페를 열게 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프로코프(Cafe Procope)는 파스칼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탈리아 출신 프로코피오 콜텔리가 1686년 파리에서 개장하였는데, 계몽주의 시대에 볼테르(Voltaire), 루소(Rousseau), 디드로(Diderot) 등 많은 철학자들이 애용하는 카페가 되었다. 특히 볼테르는 하루에 커피를 열두잔까지 마시는 커피 애호가였다. 이후 대혁명 직전까지 파리에는 약2,000개 이상의 카페가 들어서게 된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정부와 교회 등 기존권력을 비판하고 이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모색하였으며,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커피와 카페가 자유사상과 민주주의의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커피에 대한 중독은 당시에도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많은 날들을 커피를 마시며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는 물론이거니와 커피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냉철하게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면서 계몽주의를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갔으며 “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라고 말한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정치적 혁명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이미 진보적인 귀족계층과 부르주아 계급은 계몽주의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