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만나는 기쁨

양태석 화백
 

좋은 그림을 만나면 황홀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림에서 뿜어내는 미기(美氣)와 자기의 내면에 흐르는 미감이 일치할 때는 감흥을 일으킬 뿐 아니라 때로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 때가 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흥이 나고 기분이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림을 감상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수준에 따라 전달되는 미흥(美興)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성장과정이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수록 그림을 이해하는 수준이 높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미감이 풍부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같은 그림이라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정도가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감상자의 감흥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고서화를 즐기는 사람이나 현대화를 감상하는 사람이 계층과 세대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현대화를 크게 보면 동양화와 서양화가 있으며 구상과 비구상으로 구분된다. 노인계층은 동양화와 구상 계통을 좋아하고 젊은 계층은 서양화나 비구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보통 사람들은 고화나 동양화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며 서양화 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이나 유학파들은 추상성이 있는 그림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그림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고화에서부터 민화를 비롯해서 각종 종교화나 기록화가 있고 동서양화가 있으며 구상과 추상이 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도 많이 있다.
 
 그림에서 구상화는 형상을 갖추어 그린 그림을 뜻하고 추상은 형상을 깨뜨려 상(像)이 없는 그림을 말한다. 그리고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표현하는 반추상이 있으며 현실을 뛰어 넘는 초현실주의 그림이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그림이 있다. 그림은 감상하는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며 종류에 따라 감흥도 다른 것이다.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며 즐기는 애호가도 많이 있으며 나 역시 다양한 그림을 좋아한다. 심지어 사군자와 서예 작품도 즐기는 대상이며 어쩌다 명작이라도 만나면 크게 감흥을 일으킨다. 따라서 여러 화랑을 찾아다니며 많은 그림을 감상할 뿐 아니라 그림을 아예 수장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미술품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대상을 나타내는 자연주의(自然主義) 그림은 보통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다. 반추상이나 추상미술은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구상성의 그림은 기술적인 문제를 존중하고 솜씨가 좋은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비구상은 원시적이고 순수하며 기하학적인 추상성을 좋아한다. 그래서 구상이나 추상이나 명작은 인간의 내면을 상상 속으로 이끌어 환상적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나는 컴퓨터에서 많은 미술품을 검색하고 감상하는 취미가 생겼다. 한국 고미술 네트워크에 들어가 전국 가맹점의 무수한 미술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다. 미술품 감상의 풍요로움이 마련된 셈이다. 지난번 동양화 창을 검색하는 중 마음에 드는 산수화 한 점을 발견했다. 옥산 김옥진 선생이 그린 하경산수였다. 화선지 반절지의 종액으로 되어 있으며 먹색이 창윤하고 산세가 수려하여 감상자의 마음에 평화로운 감흥을 일으키는 좋은 작품이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나는 이 작품을 보는 순간 구입을 해서 오래토록 감상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인기작가 작품을 선호하되 그의 초기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에 와서 채색화 쪽이 인기가 좋은 것도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초년작이고 미술시장의 분위기가 종액이며 묵화에 담채로 되어 있으니 인기가 좋을 리 없었다. 
 작품을 구입해서 화실에 걸어 두고 감상하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다. 옥산 선생은 허백련 선생의 수제자로 국전에서 특선을 하고 추천작가 초대작가 등을 거쳐 초대작가상을 수상한 훌륭한 작가이다. 필자가 국전에 출품할 당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전망 좋은 작가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까닭은 전통화나 묵화가 칼라시대의 구미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옥산 김옥진 선생의 그림을 자세히 보니 볼수록 감흥이 일어나는 수작이었다.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가 여름의 운치를 더해 주고 능선에 분재처럼 아름다운 소나무를 그려 단조로운 화면을 조화롭게 했다. 또한 폭포 옆에 산사를 그려 선경의 경지로 이끌어 주고 있으며 중경에는 엷은 안개를 피워 더욱 운치를 더해준다. 화면전체를 유연한 먹색으로 처리하여 포근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하다. 이러한 작품을 만나면 마음에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좋은 작품을 수장하는 기쁨은 대단히 크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돈을 빌려서라도 구입하는 수집광이 많이 있다.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으려는 것과 같다. 좋은 작품은 마치 부동산과 같아서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감상을 즐기면서 기쁨을 느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수장할 때는 자기감상 수준에 맞고 걸어 둘 장소가 적당한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조화가 이루어지는 작품이면 족할 것이다. 특히, 고화는 작품의 상태가 좋아야 하고 재질이 상했거나 지나치게 퇴색된 것은 좋지 않다. 볼 때마다 마음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구입해서 감상하는 것은 바쁜 일상 속에서 큰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