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꽃 피어날 때

                                              김 원

그 여름날
아름다운 지상이
존재의 허무를 넘어설 때
나 그곳에 있었다
빛나는 그리움이
하늘빛으로 물들어올 때
나 그곳에 있었다
봉숭아꽃 붉게 피어나
누이와 키 작은 동생
손톱위에 그 꽃잎 곱게 묶고
순결한 나무처럼 서 있었다
죽도록 사랑하고 싶었을 때
혼절한 세상 저편에 묻고
나 그곳에
바람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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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타임(Summer-Time)

                                                      김 원

둥근 식탁 위의
청포도나 햇과일처럼
우리 그렇게 익어갈 수 있나
폭풍후의 수많은
그리운 기억들처럼
우리 그렇게 맑아질 수 있나
양산과 볏짚모자
투피스와 치마저고리
미세한 원자와 세포분열의 욕구가
허수아비의 무뚝뚝한 겸허와 함께
뜨거운 여름을 태연하게 견디어 내었다
산맥을 쪼개어 낮게 흐르는
차가운 물들의 유영 ,그들의 힘겨움처럼
우리 그렇게 자유롭거나
한가로워질 수가 있나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종
위대한 일꾼들의 가슴 속 흐르는
애절한 땀의 강물이여 !
서머타임의 선명한 곡조와 풍경이
예나 지금 크게 다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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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들의 합창

                                                      김 원

그것은
푸른빛으로 산화하는
팡파르의 불꽃
온몸으로 활을 켜는
거대한 절규의 합창 소리

늘어진 천지의 귓밥들이
타는 팔월의 끝자락에서
게으름을 피울 즈음
독백의 비밀들은 이처럼 아름답다고
지상 뜰 가득히 제 삶의 표식을
남기고야 말았다 

나뭇가지 걸터 앉은
가여린 이파리의 음표들
그 맑게 핀 눈부심 보다
더욱 청쾌한 화음으로
한 번 뿐인 생의 기쁨과 부활을
힘차게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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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풍

                                                                             김 원

사랑하고 싶은 여름날에는
먼 바다로부터 시원한 계절풍이 불어온다
사랑의 목마름을 위하여
푸른 습기와 하얀 소금을 한가득 싣고 

사랑하고 싶은 여름날에는
그대의 영혼으로부터 뜨거운 계절풍이 불어온다
사랑의 절기를 위하여
태양의 열정과 붉은 꽃잎을 꿈처럼 싣고

사랑하고 싶은 겨울날에는
저 들녘으로부터 차가운 계절풍이 불어온다
사랑의 눈부심을 위하여
찬란한 빛과 거룩한 눈물을 한가득 싣고

사랑하고 싶은 겨울날에는
먼 대지로부터 훈훈한 계절풍이 불어온다
사랑의 위대함을 위하여
끝없는 환희와 충만한 기쁨을 꿈처럼 싣고

우리들 생애의 가장 빛나는 날
저 먼 곳으로부터 아름다운 계절풍은 불어온다
오랜동안의 그대와
오랜동안의 사랑을
잊음 없이 기억할 수 있도록
고요한 도시를 배회하다
스치는 그 바람소리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