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칼럼-4] 월간한국인(2015-9월호) 기고.                2015. 8, 25.

여름의 노래
-한시,시조,와카-

최 재 철(한국외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  
  1. 한시와 시조와 와카
  올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매일 30도를 훨씬 웃도는 기상 상태 못지않게, 8.15 광복절을 앞두고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의 차이와 상호 관계 회복을 담보하는 ‘담화문’의 속내, 그리고 남북 간의 대치 상황 등이 우리를 더욱 무덥게 했다. 이럴 때 민초들은 위정자들에게 뙤약볕 아래 열기로 들뜬 아스팔트 광장을 적시는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 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기대하게 된다. 
  동아아시아 3국에는 전통적으로 자연과 인간 세상을 노래한 중국의 한시(漢詩)가 있고, 한국에는 향가(鄕歌)?시조(時調), 일본에는 와카(和歌)가 있다. 향가와 와카는 각각 자국 의식을 드러내는 말이다. ‘한시’가 중국의 노래인데 대하여, ‘향가’는 신라(新羅)의 노래, ‘와카’는 야마토(大和)의 노래라는 주체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이미 고대 사회로부터 동아시아 3국은 각각의 언어로 자기들의 사상 감정을 노래하는 문화적 분화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한자의 음과 훈을 차용하여 표기한 향가와 이와 닮은 방식으로 적은 『만엽집(萬葉集)』(8세기 중엽)이 있다. 
  소동파(蘇軾, 1036-1101)는 풍월주(風月主)를 자처한 「적벽부」에서 ‘강상의 맑은 바람(江上之淸風)과 산간의 밝은 달(山間之明月)은...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으로서 나와 그대가 더불어 먹는 자원’이라고 했다. 당나라 왕유(王維, 701-761)는 산수 자연을 노래하면서 풍경의 일부로서 인간을 곧잘 묘사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두보와 이백의 시를 특히 좋아했고, 헤이안시대(8-12세기)의 일본 지식인들이 좋아한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전원시인으로, 그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사계의 시「사시(四時)」중,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 모양이 많다(夏雲多奇峰)’ 라는 구절 등은 일본의 시인 바쇼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같은 몬순지역의 자연과 사계절을 공유하는 시공간 속에서 살아온 우리 동아시아 3국은 서로 감성의 공통분모를 많이 갖고 있다고 하겠다.  

  2. 매미의 노래?미(美)와 논리-
  일본고전 시가에서 여름의 노래로 가장 많이 읊어진 소재는 두견새이지만(예; ‘어찌하여 이다지도 심히 그리울까 두견새 / 울음소리 들으니 그리움이 더 쌓이네’ 『만엽집』), 그래도 여름하면 친근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매미 소리다. 중국 진나라 육운(陸雲)의 시「한선부(寒蟬賦)」에서 유래했다는 매미의 5덕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선비의 모습을 연상하는 모양에서 문(文), 이슬을 먹고 사니 청(淸), 농민의 곡식을 먹지 않아 염치(廉)를 알고, 집을 짓지 않아 검소(儉)하며, 잊지 않고 계절을 지키는 신의(信)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쓰는 모자 ‘익선관(翼善(蟬)冠)’에도 뒤편에 매미 날개 모양의 소각(小角)을 붙여 그 덕을 교훈으로 삼고자했다고 한다. 일본 근세의 대표적인 시인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매미 관련 하이쿠 한 수,

    적막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울음소리  

  이는 나그네의 발길이 바위산에 들어설 무렵 적막을 깨고 무수히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가 마치 바위에 스며들 듯이 내 가슴도 적시며 파고 들어와 고적감이 더욱 증폭된 순간에 읊은 단시이다. 이 하이쿠의 묘미는 ‘소리가 바위에 스며든다’는 데에 있다. 다음은 매미 관련 시조 한 수,   

    굼벙이 매암이 되야 ㄴㆍ래 도쳐 ㄴㆍ라 올라
    노프나 노픈 남게 소�lㄴㆍㄴ 죠커니와
    그 우희 거�些� 이시니 그를 조심ㅎㆍ여라   
                  - 작자 미상 (『청구영언』)
  
  이 시조도 역시 조선시대 시조의 한 특징인 유교적 가르침이 드러나 있다. 매미가 날개 돋아 높디높은 나무위에서 (7일쯤) 소리 내는 것은 좋지마는 (7년여의) 애벌레 시절을 기억하고 그 위의 거미줄을 조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똑같이 매미 울음소리에서 촉발된 위 두 시의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르다. 물론 방랑하는 시인과 정자나 대청에 머물러 있는 선비의 차이도 있을 것이지만, 한 쪽은 고적한 순간에 들은 소리에 즉시 반응하여 그 심상을 그대로 비춰서 ‘스며든다’고 읊은 반면에, 다른 쪽은 들은 소리에 ‘좋다’고 바로 심상을 드러내면서 또한 높이 올라갈 때를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덧붙이고 있다. 위의 두 시가 명징한 미의 세계와 논리적 사유의 세계의 차이를 각각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3. 매미의 교훈
  ‘온살을 부벼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이레나 열흘쯤을 울고/ 어두움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대로 절정’(박영근「절정」)인 매미의 울음,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 이라는 안도현은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 이란다. 끈질긴 매미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이심전심’이나 ‘눈으로 말해요’ 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지고, 정말이지 그 절절함이 배어오는 듯하다. 

    구름 봉우리 몇 번이나 무너져 달의 산(月山;갓산)
                                                - 바쇼   

  적란운이 피어오르다 무너지길 몇 차례, 절기로는 처서를 앞두고 매미 울음소리도 서서히 잦아드는 늦여름, 도회에 살아도 가로수 길이나 아파트단지 나무 있는 곳이면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글을 쓰는 동안에도 여름이 가는 것이 아쉬운 듯 줄기차게 울어대는 수컷 매미의 절정을 향한 구애의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자연의 이치인 생성과 사랑과 소멸을 체현한다. 
  이 여름에, 매미 소리를 회초리로 연상해 경각심을 일깨운 우리 선비들을 돌이켜보고 매미의 5덕을 기리며, 동아시아 3국의 위정자들과 남북한의 지도자들은 민초들을 위해 결실의 가을을 제대로 준비해야 할 때다. [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