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입국 반대에 나선 유럽, 
국경 없는 유럽의 상징은 그저 상징으로만 남을 것인가? 

한적한 터키의 어느 바닷가. 빨간 티셔츠를 입은 작은 아기가 엎드려진 채 발견되었다. 얼굴을 모래에 파묻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아기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순식간에 퍼져 지구촌을 눈물로 물들였다.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피해 시리아에서 터키로 건너간 쿠르디는 유럽으로 건너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탔으나 엄마, 형과 함께 바다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쿠르디가 형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찍었던 사진은 SNS를 통해 세계에 일파만파 퍼지면서 난민유입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유럽의 양심을 건드렸다. 

유럽연합은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난민들의 최종 목적지는 대부분 독일이다. 유럽에서 잘사는 나라이고 상대적으로 난민에 대해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독일은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했으나 우려의 목소리만 컸다.
그러자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나서 유럽의 5만여 개 가톨릭 교구가 난민 한 가족씩을 받아들이자고 촉구했다. 교황이 획기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난민 한 가구씩을 받아들일 경우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론이지만 유럽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기세다. 
이로 인해 EU 회원국들에게는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된 셈이다. 독일은 시리아 난민 수용을 위해 60억 유로(한화 8조 원)가 넘는 돈을 투입하기로 했고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도 대체로 난민을 나눠 받는 ‘난민 쿼터제’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헝가리 등 일부 국가들은 이 쿼터제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갈수록 난민자는 수가 늘어나 관광객들이 여름휴가를 보내려던 그리스 섬이 난민촌이 됐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버려진 헝가리 트럭 속에서 이주자 시신 71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 EU로 이주를 시도하려던 2500명이 지중해에서 익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13일(현지시간) 그리스 해안에서는 난민선이 전복돼 최소 34명이 목숨을 잃기도 하는 등 각 곳에서 난민사고가 잇따르자 난민거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난민 위기의 진원지 시리아, 내전이 난민을 만들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난민 위기의 진원지 시리아는 5년째 내전에 시달리면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한 금세기 최악의 인권유린지가 됐다. 이제는 일상처럼 돼버린 참혹한 내전의 출발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낙서에서 비롯됐다.  
중동을 뒤덮은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지난 2011년 3월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것이 반정부 시위에 불을   당겼다.
시리아 정부가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한 시위대에 발포해 사망자를 낳고 시위 진압에 기갑사단까지 투입하는 등 과잉대응으로 일관하자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평화 시위에 나섰던 반정부 진영은 자유시리아군(FSA)을 조직하는 등 무기를 갖춘 무장 세력으로 발돋움해 본격적인 내전으로 돌입하게 된다. 다양한 갈래의 반정부 세력은 이듬해 수도 다마스쿠스와 제2의 도시 알레포로 진격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필사적으로 저항한 알아사드 정부군도 반격에 나서 같은 해 말 알레포를 탈환하고 반군 거점을 장악해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내전 발발 2년 만에 9만여 명이 숨지고 지난해 8월에는 총 사망자 수가 19만1000명으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현재까지 4년 반 동안 숨진 사람만 모두 22만 명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민간인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내전으로 민간인에 대한 살인, 고문, 성폭행 등 다양한 전쟁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군이 민간인 거주지역까지 드럼통에 폭약과 쇠붙이 등을 넣은 일명 ‘통폭탄’을 무차별 투하하면서 시리아는 아무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지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할머니 유럽이 아닌 어머니 유럽이 될 것 
EU집행위원회는 총 16만 명의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거부당했다. 유럽에서 새 삶의 터전을 찾으려는 난민들이 난민캠프에 수용되거나 추방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 내무, 법무장관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연석회의를 열었지만 22개국 회원국이 16만명의 난민을 분산 수용한다는 데 원칙적 합의만 했을 뿐 구체적 합의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외신에 의하면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보수파 정당들이 집권한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 의무 수용에 대해 완강한 반대를 고수했다. 

세르비아에서 헝가리로 가는 철로는 난민들의 이동통로였으나 헝가리측은 이를 막고 난민들을 공식 검문소로 보내기 시작했다. 또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국경 통제를 강화할 방침에 있다. 헝가리 의회가 지난 4일 의결한 이민법 개정안은 불법 이민자 규모가 수용 한도를 넘으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불법으로 국경을 통과하면 징역 3년 형, 철조망을 훼손하면 5년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이 20년 전 발효시킨 솅겐조약은 국경에서 검문검색을 면제하는 조약으로 그 동안 국경 없는 유럽의 상징이었는데 이번 난민 사태로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제 ‘할머니 유럽’이 아닌 ‘어머니 유럽’으로 되돌아갈 것을 지적했다. 과연 유럽의 각국들은 밀려들어오는 난민들을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